목록HQ!/다이나믹 토오루! 31
Macaron
“그리하여 쿠로오와 신전의 음모는 막을 내렸습니다아아-.”“지금 뭐라고 했어?”“아무것도 아냐. 신경 쓰지 마.”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장황한 나레이션이라도 해볼까 생각하던 쿠로오는 곧 그만두고 따분한 듯 하품하며 TV채널을 돌렸다. 「프랑스 보르도에선 와이너리를 샤토(Chateau)라고 부르는데, 성이라는 뜻이죠.」「성이라니 낭만적이네요. 왠지 왕도 있을 것 같고.」 “에이, 재밌는 거 안 하네.”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대던 그는 결국 마지막 채널에서 리모컨을 내려놓고 마룻바닥 위에 엎어졌다. 마지막 채널인 교양 채널에선 와인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다. ‘구세계 와인의 대표적인 산지 프랑스 편’이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이었다. 신문의 칼럼에서 본 적 있는 유명한 와인 평론가가 리포터와 시청자들에게 와인에 대..
20.“누구 한 명이라도 허튼 움직임을 보였다간 카게야마는 끝이야.” 켄마가 지팡이를 땅에 내리꽂자 커다란 검은 구가 허공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안에 카게야마가 쓰러져 있었다. “토비오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아직은 안 했어.” 그가 지팡이를 살짝 휘두르자 구체에서 파지직하고 전기가 튀었다. “하지만 곧 하게 될지도 모르지. 너희가 협력해주지 않는다면 말이야.”“그만둬!” 새파랗게 질린 오이카와가 저도 모르게 한 발짝 내딛자 켄마는 싸늘한 눈으로 그를 노려봤다. “움직이지 말라고 했어.” 오이카와는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서서는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너 미쳤어?!”“말했잖아. 우마왕이 너희 편인 걸 안 이상 내가 카게야마를 해치지 못할 이유도 없다고.” 텐도의 경악어린 외침에도 켄마는..
19.오래된 나무 계단에선 삐걱이는 소리가 났다. “좋은 아침.”“일어났냐? 커피 마실래?”“응.” 하품하며 계단을 내려온 오이카와는 주위를 휘휘 둘러보며 익숙한 그림자를 찾았지만 찾는 이의 모습은 머리카락 하나 보이지 않았다. “어라? 토비오쨩은?”“방에 있는 거 아녔어?”“아니. 일어나보니 없던데. 밑에 있을 줄 알았는데 못 봤어?”“오늘은 못 봤는데?” 커피에 뜨거운 물을 붓던 이와이즈미의 손이 그대로 멈췄다. 검은 액체가 순식간에 불어났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한 건…….”“카게야마님이라면 산책하러 가셨는데.” 커피가 잔에서 흘러넘치기 직전, 하녀의 목소리가 불안을 가라앉혔다. “곧 돌아오시지 않을까요? 식사 준비도 거의 끝나가고.”“그래요? 그럼 다행이네요.” 오이카와는 안도하며 이와이..
18. ∥1월, 쿼크누스 카게야마는 작은 연못을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비단처럼 윤이 나는 비늘을 가진 물고기들이 투명한 물속을 헤엄치고 있었다. 풀잎을 하나 따 연못에 던지니 물고기들이 모여들어 풀을 툭툭 쳐보더니 다시 흩어져 제각기 지느러미를 흔든다. 그는 민트 잎을 입에 물었다. 어쩐지 그리운 향이 난다. “역시 여기 있었군.”“폐하를 뵙습니다.” 아무렇게나 앉아있던 카게야마는 머리 위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황급히 격식을 차리며 무릎을 꿇었다. “편히 있어도 된다.” 우시지마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카게야마는 편하게 다리를 쭉 펴고 앉았다. “보통은 내가 편하게 앉으라고 해도 괜찮다거나 이게 편하다면서 계속 무릎을 꿇고 있는데 말이지.” 그 말에 카게야마는 쭈뼛거리며 다시 무릎을 꿇으려 들었다. “제가 또..
17.“좋은 소식이다.” 아침부터 분주히 주변을 살피며 자잘한 마법을 써대던 이와이즈미가 이를 드러내고 씩 웃었다. “여긴 푸루스 근처인 모양이야. 오늘 점심쯤엔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 밝은 표정으로 운 좋게 던전 입구가 푸루스 근처에 이동했을 때 나온 것 같다고 말하는 이와이즈미와는 대조적으로 오이카와와 카게야마의 얼굴은 퀭하기 그지없었다. “너희 어제 안 잤냐?”“네. 좀…잠을 설쳤습니다.”“왜?” 이와이즈미는 질문을 던지자마자 뇌리를 스치는 생각에 “헉” 하고 헛숨을 들이켜며 의심의 눈초리로 두 사람을 훑었다. “설마 너네…내가 자는 동안 정말로 세워본 건…….”“아니거든?! 날 뭘로 보고!”“아니냐? 그럼 다행이고.” 이와이즈미가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자 카게야마가 손을 번쩍 들었다. “..
16.복도를 청소하고 있던 하녀들이 그를 보고 급히 허리 숙여 인사했다. 거동이 불편해 하인의 부축을 받으며 걷고 있던 두베 공과 마주친 그는 인사를 나눈 뒤 한 방문 앞에서 멈췄다. 그의 방은 아니었다. 바로 옆방이었다. 오이카와는 머뭇거리다 문고리를 돌렸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다. 잘 정리된 방의 침대 위엔 사람 대신 검은 망토만이 곱게 접힌 채 놓여 있을 뿐. 오이카와는 망토를 향해 팔을 뻗었으나, 차마 그걸 만지진 못 하고 머뭇거리다 손을 거뒀다. 두꺼운 벨벳 커튼을 여니 창문 밖에 뽀얗게 성에가 끼어있었다. 이제는 정말로 겨울이 왔음을 인정해야 했다. “폐하.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문밖에서 하녀의 공손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이카와는 얼빠진 사람처럼 멍한 표정으로 방에서 나왔다. 나선형의 계..
15.“…토비오쨩, 아침부터 왜 그런 열렬한 눈으로 오이카와상을 보고 있어?”“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잠에서 깨자마자 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카게야마를 보고 오이카와가 인상을 쓰자 카게야마는 화들짝 놀라며 떨어졌다. “뭐야, 어제 책에서 나 배신하는 장면이라도 봤어?” 그가 심드렁하게 던진 말에 카게야마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되물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토비오쨩이 갑자기 죄인처럼 내 눈치 볼만한 일은 그것뿐이잖아.”“역시 오이카와상은 훌륭한 세터…!” 카게야마가 진심으로 감탄하자 오이카와의 입술 사이로 피식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토비오쨩은 진짜 한결같네. 이 상황에서도 세터 운운이라니 어떤 의미론 정말 굉장해.”“아뇨, 그 정도까진…….”“칭찬 아니니까 그렇게 수줍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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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머리 꼭대기에 떠 있던 해가 그 기세를 누그러뜨리기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하말은 떠나는 그들에게 약초 두 뭉치를 건네주었다. 그중 한 뭉치는 독특한 향이 나는 허브였다. 아쉬워하는 알과 타르프에게 나중에 꼭 편지하겠노라 약속하는 세 사람에게 하말이 웃으며 “어차피 같은 상단에 있는 이상 언젠간 또 볼 텐데 뭘 그러나.”라고 말했다. 그들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루 오빠가 있어서 불 피울 때 좋았는데.”“뭐, 내가 유능하긴 했지.”“몬스터들 잡을 땐 별 도움이 안 됐지만.”“…아픈 데를 찌르지 말아 줄래?” 타르프가 이를 드러내며 배시시 웃자 오이카와도 미소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세 사람은 타르프가 머리가 새집처럼 되었다며 투덜거리는 걸 들으며 짐을 말에 싣고 안장 위에 올..
12.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오이카와의 눈에 비친 건 햇살이 사막의 모래를 닮은 금색으로 윤곽을 덧그리고 있는, 카게야마의 뒷모습이었다. “일어났으면 깨우지 그랬어.” 그가 팔을 쭉 펴고 기지개를 켜며 말하자 침대에 걸터앉아있던 카게야마가 몸을 돌려 그를 쳐다봤다. “깨울 필요가 없으니까요.”“왜?”“로드워크를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플란타에 도착했으니 아침부터 출발할 일도 없으니까요.”“하긴.”“이와이즈미상이 저녁때나 출발할 거라 하셨으니 좀 더 주무셔도 됩니다.”“그럼 토비오쨩도 좀 더 자두지그래?”“전 괜찮습니다.” 오이카와는 눈가를 가늘게 좁히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는 별안간 카게야마의 허리를 끌어안더니, 제 쪽으로 확 끌어당겼다. “괜찮기는! 오이카와상이 더 자두라는데 말이야!” 갑작스런 오이..